본문 바로가기
정보

Kimchi의 기원 한국이 Kimchi의 기원인 증거

by 토끼의시계 2021. 2. 7.
반응형

세계 최대 포털서비스인 구글이

‘origin of kimchi(김치의 원조)’라는 검색어에 ‘중국'이라고 답해온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용자들과 언론의 지적이 잇따르자, 구글은 이날 오후 검색 결과를 ‘한국'으로 수정했다.

 

이날 오전 구글의 ‘검색 언어'를 영어로 설정한 뒤, ‘origin of kimchi’ ‘kimchi origin’을 검색하면

최상단에 ‘place of origin’ 문구와 함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와 ‘China’(중국)란 검색 결과가 나왔다.

반면 언어를 한국어로 바꾸고 같은 내용을 검색하면 ‘한국’이 나타났다.

똑같은 질문인데도, 구글이 한국어 버전에선

‘한국’이라고 답하고 영어로 입력하면 ‘중국’이라는 상반된 답을 내놓은 것이다.

 

구글코리아는 이날 본지 질의에,

“구글 지식 패널 정보에 나타나는 검색 결과는 웹 상에서의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동 생성되며,

이 과정에서 복수의 출처로부터 검증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며

“하지만 간혹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고,

이번 경우 서둘러 수정 조치했다”고 했다. 이날 오후 구글은 ‘김치의 기원'에 대한 검색 결과를

영문 버전에서도 ‘한국(Korean)’으로 바꿨다.

 

김치가 자국 음식이라는 중국의 억지 주장은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1월 9일 구독자 1420만 여명의 중국 유튜버 리쯔치(李子柒)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배추로 김장을 하는 영상을 올리며

‘#Chinese Cuisine(중국 전통요리)’

‘#Chinese Food(중국 음식)’ 해시태그를 달아 한·중 간 김치 원조 논쟁에 불을 지폈다.

같은 시기에 장쥔(張軍)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자기 트위터 계정에 김치를 만들어 올려 의구심이 커졌다.

 

 

 

우리나라 유튜버가 김치를 한국 음식이라고 소개했다는 이유로

중국 소속사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당하기도 했다.

11월 15일 구독자 550만 여명의 유명 유튜버 햄지(31·본명 함지형)는

자신의 채널 게시판에 “김치나 쌈은 당연히 우리나라 (음식) 문화”라며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가,

중국 네티즌에게 비난을 받았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자 중국 사이트에 햄지의 영상을 공급하는

중국 소속사 ‘수시안’ 측은 지난달 17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중국 팬에게 상처를 입힌 (햄지의) 발언으로

중국 팬의 감정과 당에 대한 우리 회사의 신뢰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고

주장하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 부분에서 중국공산당의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햄지는 다음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고 해야 한다면 중국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논쟁이 거세지자 지난 20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파오차이(泡菜·중국식 절임 채소) 문제를 미식 차원에서 유익하고도

우호적인 교류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감정을 해치지 않도록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치가 한국 것인 이유

오늘날의 김치 모양은 1600년대 고추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는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먼저 말리는 방법,

즉 건조를 통해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법이었다.

이후 인류는 소금으로 절이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다음 단계가 발효시키는 식품저장방법이 나왔다.

김치도 이런 식품저장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우리조상들도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이용해 식품을 절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김치의 시작이었다.

 

당시 한반도는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을 채소를 통해 섭취했다.

그러나 4계절이 뚜렷한 기후 특징으로 한겨울에 채소를 먹을 수 없게되자,

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게 되었고,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이다.

 

초기 김치모양을 옛 문헌등을 통해 추정해보면,

채소류를 장기간 저장하기 위한 단순한 소금절임 형태였다.

 삼국지 위지동전(三國志 魏地東傳)에서 고구려는 발효식품을 잘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가 있으며,

일본 문헌인 정창원고문서(正倉院古文書)는 수수보리저(須須保里菹)

즉 김치무리가 일본에 전달됐다는 기록이 있다.

 

 

三年 春二月 以順知爲中侍 納一吉飡金欽運少女 爲夫人 先差伊飡文穎波珍飡三光定期 以大阿飡智常納采 幣帛十五轝 米酒油蜜醬豉脯 醯一百三十五轝 租一百五十車
3년(서기 682년) 봄 2월, 순지(順知)를 중시로 삼았다.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작은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기로 하고, 우선 이찬 문영(文穎)과 파진찬 삼광(三光)을 보내 기일을 정하고, 대아찬 지상(智常)을 보내 납채(納采)[4]하게 하였는데, 예물로 보내는 비단이 15수레이고 쌀, 술, 기름, 꿀, 간장, 된장, 포, 젓갈이 135수레였으며, 벼가 150수레였다. ㅡ 《삼국사기신문왕 본기

 

 중국 문헌인 ‘후주서(後周書)’등에서도 절임에 대한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이미 초기 형태의 김치류 제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6세기 중국 북위때의 책인 

 제민요술(濟民料術)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했으며,

주로 산미료에 담그는 ‘엄초법’ 소금과 발효 기질을 이용하는 ‘발효지법’,

오늘날의 장아찌에 해당하는 ‘엄장지법’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역사기록을 담고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문왕편에서는 

 혜(醯:김치무리)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김장독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든 독이 법주사경내 현존하고 있다.

 

이런 점 등으로 보아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상 삼국시대는 본격적인 정착 농경생활이 발달되었던

문화적 환경이 갖추어 졌기 때문에 한반도 기후와 맞아떨어지는

소금 절임을 통한 초창기 김치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채소의 소금 절임이나,

된장 간장에 담근 장아찌식 절임과 젖산발효 초기에 머무른 비교적 담백한 야채 절임류가 많았다.

그러나 김치처럼 식품의 다섯 가지 기본 맛에다 젓갈로 인한 단백(蛋白) 맛과 발효의 훈향을 더하는,

일곱 가지 독특한 풍미를 갖춘 발효야채식품은 한국의 김치뿐이다.

이러한 김치는 한반도의 기후, 계절, 각 가정의 생활환경 및 식습관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 정착했다.

 

중국은 김치의 발전 과정에 대한 문헌이 전혀 없다. 

어느날 갑자기 고춧가루와 생강, 젓갈, 배추 등이 들어간 김치가 뿅 하고 생겼다.

하지만 한국은 젓갈을 넣은 김치의 기록이 16세기 문서에서 나타나 서서히 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정말 김치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면

김치의 발전과정이 한국에만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현상일 것이다.

김치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파오차이와 김치가 같다고 생각하여, 파오차이의 기록이 곧 김치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고춧가루를 넣는 것은 최근 한국에서 새로 생긴 문화라고 기록까지 되어있는데,

이까지 중국의 전통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 보면 역사를 전혀 검토하지 않고,

'어? 채소 절임이네? 우리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국 유튜브 채널에서 주장하는 '전통적인 중국 파오차이'를 살펴보면

고춧가루가 치덕치덕 발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최근 만들어진 문화인 것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오류를 저지른 것.

그런 형태의 현대적 통배추김치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백여 년 전의 일이다.

더군다나 김치 양념의 대표 재료인 고추도 임진왜란(1592) 전후에 들어왔고,

그마저도 처음에는 약용으로 쓰거나 가난한 서민만 먹다가 18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양념 재료로 사용했다. 

출처 적어도 중국이 중국 전통 음식이라고 주장하려면 한국의 김치와 형태가 달라야하며

'배추와 고춧가루'가 들어가선 안 된다.

 

김치에 대한 논란은 구글 위키피디아의 수정으로 잠시 사그라들었으나

중국측의 반박이 심한만큼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