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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poem

가족의 조건

by 토끼의시계 202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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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태어나자마자 결정되는 가족이라면 부모님이 있지요.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하진 못합니다.

선험적 가족의 형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태어나면서 선택된 이 구조를

배반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죠.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면서 부모자식 간의 연을 끊을 수 있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인들의 생각 속에서 가족이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정하는 매체는 무엇일까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정의할 때

한 끼도 같이 안 먹는 가족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같이 사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정의할 때

같이 살지 않는 가족도 분명 존재 합니다.

 

백과사전의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그 집단입니다.

우리가 친족적 호칭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친분을 기준으로 가족의 기준을 나눌 때

어쩔 수 없는 관계속에 가족을 놓아두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남의 횟수는 친구가 더 많은 사람도 있죠.

타지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 입양을 통해 가족화의 구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호적 관점의 부모와 존경의 관점에서 자식도 문제가 있는 정의입니다.

가족에게 꼭 필요한 관계성은 무엇일까요?

 

빈 자리가 커다랗다.

집밥이 먹고 싶다.

 

부재의 공간이 다른 누구보다 큰 것이 가족이 아닐까 합니다.

부재라는 것이 일정한 상황이 아니고는 알 수 없습니다.

연인의 상실감과는 전혀 다른 부재이죠.

부재의 방식도 천차만별인데

인간의 욕구에 모든 부분에서 가족의 부재가 가족의 필요성을 알게 합니다.

혼밥이라는 말이 왜 독립적으로 보이냐 하면

그 반대의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식사는 2명 이상이 하던 행위 입니다.

어느 순간 식사의 정의가 사라지고 대화의 상대가 식탁에 모이지 않을 때

사람은 반 관계적인 진화를 하였고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식사를 하게 되었죠.

 

가족의 의미가 식사의 독립화를 통해 줄어들었고

혼자라도 대충 때우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도시락이나 컵밥이나 배달음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반대로 한번 정의해봅니다.

우리는 가족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을 하고 있나요?

수많은 기념일들이 우리를 가족이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묻는 부모들이 생겨나면서

가족은 호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부모의 자식의 기대에 부응하고 자식 역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노력의 범주 안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역시 가족의 조건은 풀 수 없는 숙제 같네요.

 

여러분은 가족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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